서울대공원과 무관한 팬 사이트예요

오늘 · 설호 가이드·읽을거리

민화 속 호랑이 옆엔 왜 까치가 있어요?

설호는 2025년 6월 6일 서울대공원(경기 과천)에서 태어난 시베리아호랑이 암컷이에요.

맹수사 야외 방사장 관람 시간은 09:00~17:00예요(서울대공원 관람안내, 관람 시간 확인일 2026-10-06). 동물사 여건과 날씨에 따라 관람이 제한되거나 바뀔 수 있어요.

오늘 기록은 홈에서

확인일 2026-10-07

이 글은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항목들과 서울시 문화 소식을 바탕으로, 옛 그림 속 호랑이 옆에 왜 까치가 있는지를 정리한 글이에요. 그림의 뜻에 관한 해석은 사전 집필자의 풀이라서 사실과 나누어 "집필자는 …로 풀이해요"라고 적었어요.

까치호랑이, 호작도는 무슨 뜻이에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까치호랑이」 항목(정병모 집필)은 까치호랑이를 호랑이와 까치를 함께 그린 그림이라고 정의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같은 항목에 따르면 이 그림을 한자로 호작도(虎鵲圖)나 작호도(鵲虎圖)로 옮겨 부르기도 하지만, 이 이름들은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대요. 조선시대에는 호도(虎圖)나 맹호도(猛虎圖)라고 불렀다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처음부터 까치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같은 항목에 따르면 까치호랑이의 도상은 원나라와 명나라의 호랑이 그림에서 시작됐어요. 특히 명나라 호랑이 그림인 유호도(乳虎圖)나 자모호도(子母虎圖)가 임진왜란 전후에 조선에 전해졌고, 그 뒤에 까치호랑이라는 한국적인 그림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사전은 17세기에 명나라풍으로 그려진 호랑이 그림을 보면 배경에 까치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적었어요. 집필자는 이를 두고 그때 호랑이 그림에서 까치는 여러 배경 가운데 하나인 선택 사항이었을 뿐 특별한 뜻을 지니지 않았다고 풀이해요. 같은 대목은 그 시기 호랑이 그림의 대부분이 까치 없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적었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왜 하필 까치였을까요

사전은 까치호랑이를 이루는 호랑이, 까치, 소나무가 모두 한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소재라고 설명해요. 까치는 복을 가져온다고 하여 한국인이 좋아하는 새이고, 소나무는 한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다만 같은 항목에 따르면 호랑이 그림에 까치가 나오는 것은 중국 원나라 때부터 시작됐어요. 중국에서는 표범과 까치를 함께 그린 그림이 사랑받았는데, 표범의 표(豹)와 보(報)의 발음이 비슷하고 까치가 새 소식을 상징해서 새 소식을 전하는 길상 그림, 곧 보희(報喜)로 여겨졌대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이 설명은 중국의 표범과 까치 그림에 관한 것이에요.

까치가 늘고, 호랑이는 우스워졌어요

사전은 19세기 민화 호랑이 그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적었어요. 배경에 까치가 나오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고, 까치가 배경에 머물지 않고 호랑이와 관계를 맺는 상대로 그려졌다고 해요. 사전이 예로 든 일본민예관 소장 〈까치호랑이〉에서는 까치와 호랑이가 서로 맞서 있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집필자는 그러다가 결국 둘의 관계가 뒤집혀서, 호랑이는 바보처럼 우스꽝스럽게, 까치는 당당하게 그려졌다고 적어요. 집필자는 이를 바보호랑이의 등장이라고 부르고, 그 덕분에 호랑이가 우리에게 더 친근한 캐릭터가 되었다고 풀이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둘이 늘 맞서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사전이 예로 든 리움미술관 소장 〈까치호랑이〉 한 점에는 "호랑이가 남산에서 부르짖으니 까치들이 모두 모여들었다(虎嘯南山, 群鵲都會)"라는 구절이 적혀 있고, 집필자는 이 그림의 호랑이와 까치 사이가 유난히 좋아 보인다고 적었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호랑이는 양반, 까치는 서민이라는 풀이

집필자 정병모는 19세기 까치호랑이에 그때 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가 겹쳐 있다고 풀이해요. 그 풀이에서 호랑이는 양반이나 권력을 가진 관리를, 까치는 서민을 대표해요. 집필자는 까치가 호랑이에게 대드는 구성을 보며 서민들이 신분에 대한 불만을 풀었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같은 항목은 그때 서민들 사이에 까치가 지혜로 힘센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까치호랑이 설화〉가 유행했다고 소개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집필자는 이 변화를 19세기 역사와 이어서 풀이해요. 홍경래의 난과 동학혁명 같은 민란이 잦아지고 서민의 목소리가 높아지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도가 무너졌는데, 서민의 위상이 높아지는 이런 변화가 까치호랑이에 반영됐다는 풀이예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이 문단과 위 문단의 연결은 그림을 해석한 집필자의 견해예요.

새해 대문에 붙인 호랑이 그림

「용호문배도」 항목(정병모 집필)에 따르면 정월 초하루에 한 해 동안 액운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기를 바라며 대문 문짝 양쪽에 용과 호랑이 그림을 붙였어요. 대문 문짝의 향좌(向左)에 호랑이 그림을, 향우(向右)에 용 그림을 붙였고, 그림 대신 마름모꼴 종이에 호(虎) 자와 용(龍) 자를 붙이기도 했대요. 호랑이 그림은 호랑이가 삼재를 쫓는다는 호축삼재(虎逐三災), 용 그림은 용이 만복을 가져다준다는 용수오복(龍輸五福)의 뜻이었다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용호문배도」(정병모 집필)).

같은 항목은 용과 호랑이를 함께 그린 용호도가 16세기 그림에서 확인되지만 그때 문배로 쓰였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적었어요. 19세기에는 용호도가 문배 풍습과 결합하면서 용호문배도로 성행했고,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다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용호문배도」(정병모 집필)).

「호랑이부적」 항목(김도현 집필)은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 등에 따르면 해마다 정월 초하루에 궁궐뿐 아니라 민가에서도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적었어요. 같은 항목에 따르면 호랑이와 매를 함께 그린 부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형태이고, 집필자는 매가 지닌 삼재를 쫓는 뜻에 호랑이의 벽사, 곧 나쁜 기운을 막는 뜻을 더해 부적의 기능을 키우려 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부적은 주로 적색으로 그렸다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호랑이부적」(김도현 집필)).

2022년 1월 서울시 문화 소식은 서울역사박물관의 호랑이 전시를 소개했어요. 그 전시(2022년 4월 24일까지)에는 호랑이와 까치 그림,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백자가 함께 나왔고, 시민이 참여하는 호랑이 부적 체험 코너도 있었어요. 체험에 쓴 부적은 박물관 소장 유물을 본떠 만든 것으로, 호랑이 등 위에 머리가 셋 달린 매가 올라탄 모양이에요(서울시 문화 소식 「설날, 서울역사박물관에 88마리 호랑이 보러 오세요.」(2022-01-28)). 이미 끝난 전시예요.

서낭신 그림 속 까치호랑이

「까치호랑이」 항목은 황해도 무속화에도 까치호랑이와 같은 구성이 있다고 소개해요. 소나무 위에 까치 두 마리가 있고 그 아래 호랑이가 있어 민화 까치호랑이와 닮았지만, 사전은 이 그림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서낭신을 그린 종교화라고 설명해요. 사전은 서낭신이 산신신앙과 연관이 깊기 때문에 호랑이가 나온다고 설명해요.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서낭신을 대표하고 까치는 신의 메신저라고 해요(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정병모 집필)).

그림 속 호랑이와 실제 호랑이

이 글은 옛 그림과 풍습에 관한 이야기라서 실제 호랑이의 몸과 생활은 다루지 않았어요. 실제 호랑이의 줄무늬는 줄무늬 글에, 발바닥과 발톱은 발 글에, 시베리아호랑이가 어떤 동물인지는 시베리아호랑이 글에 출처와 함께 정리해 두었어요.

설호의 오늘은 기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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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확인일 2026-10-07. 설호어웨이크가 직접 쓴 글이고, 바뀐 내용은 서울대공원 공식 안내를 따라 주세요. 서울대공원과 무관한 팬 사이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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